
한낮의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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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유성
(2222년 기준) 별에서 온 그대 부장
18세 181cm 67kg 2학년 3반
익숙했던 궤도 밖으로
뒤돌지 않고 가다 보면
언젠가 그댈 만날 수 있을까
<별에서 온 그대> 입부 신청서
그들은 나를 미래인 이라고 부른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여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는 게 문제다. 이백 년 전 과거로부터 그들이 왔지만 이곳은 여전히 2222년이고, 나는 2222년의 사람인데……. 더군다나 학교 건물이 통으로 과거의 양식으로 뒤바뀐 건 그들이 왔기 때문 아닌가. 내가 미래인인 게 아니라 쟤네가 과거인인 건데. 내가 과거로 간 게 아니라 쟤네가 미래로 온 건데. 우리 학교 돌려줘 이 나쁜 놈들아. 우리 미미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 못된 놈들아.
불만이 생기면 입술부터 대빨 내미는 건 다섯 살 때부터 존재하던 현유성의 유구한 습관이다. 몰래 사모하던 부장 선배가 말도 없이 우주로 이민을 가버린 이래로 이렇게 자주 입술을 내민 건 처음이었다. 갑작스러운 외계 생물의 침공으로 주변 사람들을 다 떠나보내야 했을 땐 습관 내비칠 여유도 없었는데 그때보다 혼란스러운 지금은 왜 이렇게 유치 뽕짝이 된 건지 본인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과거에서 온 이들을 편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들이 미래를 혼란스러워하는 만큼 현유성 역시 그들의 존재가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과거보다 기술이 발달하고 비현실적인 일들이 더 많이 관측된다고 하여도 제 눈앞에 벌어진 초자연적인 현상을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속으로 중얼중얼 어이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다 토로하고 나면 턱 근육이 저렸다. 유성이 손바닥으로 튀어나온 입술을 툭툭 집어넣는다. 나 혼자 이래 봤자 바뀌는 건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만 막막하구나……. 문득 옆을 돌아본다. 자기가 시공간을 어떻게 뒤튼 지도 모른 채 자고 있는(꺼졌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안드로이드 미미를 보니 괜히 눈물이 찔끔 난다. 몸을 숙여 존재하지도 않는 안드로이드의 심장 박동을 잰다. 심전도 기계가 있었다면 분명 오류가 떴겠지. 미미야 빨리 일어나서 들려줘. 나를 구해줄 우주 왕복선의 주파수를. 그리고는 과거인들을 몰래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역사로만 들어왔던 2020년이나 원래부터 살고 있던 2222년이나 삶의 방식은 그리 다를 것도 없었다. 이를테면 동아리 입부 계기라든가. 과거인들은 조금 특별한 사유를 원하는 듯 보였지만…… 진짜로 별 게 없었다. 무동아리로 남겠다는 다짐을 깨버리고 굳이 천체관측부에 들어간 건 오리 입술의 원인인 그 부장 선배 때문이었다. 현유성은 일 학년 봄에 동아리 홍보를 돌던 구미지 선배를 만났고 처음엔 손에 쥐여진 신청서를 정중하게 돌려드렸다. (진짜 역사책에 나올 것처럼 매우 아날로그스러웠다.) 돈만 있으면 자유롭게 우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세상에서 옛사람들처럼 유유자적 하늘 구경하고 생산성 없이 시간 때우는 게 뭐가 좋다는 건지. 그런 천체관측부에 발 들이겠다 결심한 건 구미지 선배와 대화를 시작한 지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잠시 스쳤던 종이의 질감이 생각보다 더 거친 느낌으로 지문 위를 스쳤기 때문에. 한 번 종이의 맛을 보면 다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딱딱하고 미끌거리는 액정은 이제 기분 나쁘게 느껴질걸. 그리고 거기서 반응이 왔다는 건 별을 관측하는 전통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란 말이지. 이상한 논리를 들이밀며 구미지 선배는 웃었다. 당장 기억나는 그때의 기억은 어느 순간 투박하게 깎인 연필로 입부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과 구미지 선배의 송곳니가 남들보다 뾰족했다는 것 정도다. 지금은 그 송곳니가 너무 밉다. 그 날카로운 이만 아니었어도 별 구경하다가 학교에 갇힐 일은 없었을 텐데.
구미지 선배가 갑작스레 우주로 떠나고 어영부영 부장을 맡게 된 지가 오 개월. 오래된 망원경으로 구미지 선배가 도착했을 별을 찾던 게 석 달. 갑자기 나타난 안드로이드에게 미지 대신 미미라는 이름을 붙여준 게 한 달. 엇비슷하게 등장한 종말적 상황에 놓인 게 몇 주. 역병으로 일부를 잃고 구조 왕복선에 나머지 일부를 태워 보낸 게 벌써 며칠이다. 현유성은 이제 차게 식은 몸뚱이를 지하로 옮기면서도 울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적어도 시간 선이 뒤바뀌며 미미가 고장 나기 전까지는 울지 않았다.
환상은 포곤포곤 내리고 있었다.
으리라 믿는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쯤은 품고 있었
물론 그런 환상 같은 게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한 번
